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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11| | (081111) 잔여수명
Thoughts 2008. 11. 11. 23:51

(081111) 잔여수명

모처럼 집에 일찍 들어와서 결원없는 가족이 식탁에서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다. 각자 돈벌이는 하기 전에는 이게 그리 힘든 일인지 몰랐다.
일이 많은 날은  늦어서 그렇고, 일찍 끝나는 날엔 그동안 못한 약속을 잡거나, 아니면 일찍 끝나서 축배를 들거나 또 스트레스를 푼다는 이유로 밥을 먹거나 술을 먹거나. 이런 이유로 저녁식사에 맞춰 집에 들어오기란 쉽지 않다. 또 내가 됐다고 해도 가족 구성원 모두가 딱 이렇게 맞아떨어지는 경우는 꽤나 높은 경우의 수임엔 분명하다.

밥을 다 먹고도 치우기 전에 식탁에 그대로 앉아, 역시 우리가족답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된다. 아빠의 10년 후배가 자식을 결혼을 시키는 지경이니 이젠 쪽팔려서 누나들을 손숙의 결혼정보회사에 넘기겠다느니, 가입비가 20만원이니 일단 투자비로 생각하고 본인들이 넣겠다느니, 이것도 부모중 누구한명의 책임은 아니니 10만원씩 공동출자를 하자느니, 내가 누나의 남편감을 물어오면 포상금으로 200만원을 주겠다느니. 또 부동산세재가 바뀌면 이사를 하는게 나은지, 있는게 나은지. 엄마가 보는 드라마는 왜 항상 시청률이 낮은지. 케이블티비의 수혜자는 가족중 아빠뿐이라든지. 기독교인인 엄마는 왜 어디서 고사음식을 가져오는 것인지. 회사의 임원들은 뇌졸중에 잘걸리니 나는 절대 임원을 하지마라라든지. 거창할 것 하나 없는, 서로 자기말이 맞다고 우기며 상대방의 말을 딱딱 끊어먹고 들어가도, 중간중간 바나나 주스까지 갈아마시며  참으로 일상이지만 이게 참 좋다라고, 이정도가 참 좋다라고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얘기중 노후대비에 관한 얘기를 하다 현재 엄마 아빠의 현금출납 얘기가 나오고 재산세,역모기지 이런, 나로써는 아직 도통 잘 알수 없는 얘기가 나오는 와중에 아빠가 얘기를 했다.

"앞으로 내가 20년을 더 산다 했을 때..이 집을 역모기지를 걸고...."    
 -"아빠가 30년을 살지 40년을 살지 어떻게 알아?"
"현실적으로 봤을 때......."

뭐 이런식으로 자연스럽게 또 금방 얘기는 이어져나갔다.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생을 다한다. 아니 언젠가라기보다 길어야 100세? 수명은 지금까진 과학과 의술이 발달했다해도 그정도이다.
나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건 안다. 이건 아마 7살정도만 지나면 다 아는 사실일 꺼다. 요새는 특히 애들도 어른 못지 않으니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부터 그 사실을 알고만 있지. 한번도 딱히 체감된적은 없다.죽는다는 건 알지만. 내가 죽을 것이라는걸 심각하게 고려해본적은 없다. 아니 있어도 어떻게 죽을 것인가 아니 죽게 될것인가. 죽기 전에 어떻게 살아야할것인가. 이러한 삶과 죽음에 대한 관념적인 문제일 뿐이지
그것이 경제적인 부분과 산술적인 계산을 해본적은 없다.

아빠는 심각하게 말한것도 아니고, 어떠한 얘기중에 흐름속에 나온 얘기지만. 너무도 자연스럽게 '잔여수명'에 대해 말했다. 아빠 나이는 그게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식탁머리 한구석에서 여전히 막내아들로써 건방떨며 몸 뒤틀고 앉아 바나나주스나 빨아먹고 있는 나에겐 뭐랄까.
섭섭하다기 보다 먹먹한 그런 기분이 들게했다. 언젠가 나도 아빠나 엄마처럼 부모없이 삶은 살아가야할 것이 분명하지만, 아빠나 엄마가 나의 그런삶을 만들거라는 생각은 안해봤다. 아니 만든다기 보다 염두한다는 것. 아니 염두한다기보다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미 아빠 엄마는 그럴수 있는 환경과 나이임에도 그럴 줄 몰랐다. 실감도 못했고, 썩 와닿지도 않았다.

20년..슬쩍 겁이 났다.
그 때는 내가 쉰살이 될테지만. 아직 서른이 나로써는 겁이 났다.

어차피 다시 자고 일어나 아침이면. 급히 출근준비하며 엄마 속을 뒤집어놓고 튀어나가고, 아빠에게 전활 걸어 이거저거 내 대신 뭐 좀 해달라고 할테지만. 애교랍시고 또 투정이나 부리는 말 안들어먹는 놀랍도록 징그러운 서른살의 막내겠지만.

카드값이 좀 더 나와도 이번주엔 가족외식이나 한번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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